마일스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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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번역 후기

마일스 번역 후기

악기 연주를 어려서부터 해왔기 때문에 주로 치는 기타를 빼고도 피아노, 베이스, 드럼을 어느 정도씩은 다 연주해요. 밴드에 멤버가 빠지면 어설프게나마 대타를 할 수준 정도까진. 밴드를 오래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거든요. 그래서 악기 연주나 밴드가 나오는 음악 영화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편이에요. 실제로 뮤지션들이 쓰는 용어들도 많이 아는 편이고요.

그런데 <본 투 비 블루>에 이어 <마일스>까지 작업하면서 느낀 거지만 재즈 영화는 쉽지가 않더라고요. 둘 다 전기 영화라 그런지 몰라도 실존 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제가 재즈를 좋아하긴 해도 록을 좋아하는 정도로 팬이 아니기 때문에 재즈 레전드들의 특징 같은 것들은 익숙하질 않아서요.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렇게 꼬장꼬장한 사람인 것도 작업하면서 정보를 뒤져보다 알았어요. 재즈 관련 커뮤니티와 잡지들을 보면서 재즈 팬덤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두텁고 재즈와 관련된 세부적인 정보에 민감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아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작업이 더 부담스러웠어요. 마일스가 걸린 병이 관절염인지 퇴행성 질환인지까지 재즈 전문가 분들에게 여쭤보면서 해야 했을 정도라.

영화에 ‘Social Music’이라는 말이 몇 번 나와요. 처음에도 나오고 끝에도 나오고.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음악을 Jazz라고 부르지 말고 Social Music이라 부르라고 하죠. 이게 대본엔 대문자로 나오지 않아요. 그렇다보니 이게 재즈계에서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 말인지 영화에서만 등장한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검색에 걸리긴 하는데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고. 이럴 땐 ‘사교 음악’, ‘사회적 음악’으로 단어에 맞춰 작업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어요. 그래서 사방팔방 여쭤보기 시작했어요. 다행히도 연락드릴 분들 중에 음악계 분들이 계시거든요. 배철수의 음악캠프 하시는 배순탁 작가님에게도 여쭤보고 음악평론가 차우진님에게도 여쭤봤는데 두 분 다 재즈 전문가가 아니시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차우진님이 재즈 평론하시는 황덕호님과 아신다고 여쭤보고 말씀해 주셨어요

social music은 고유명사로 고정된 건 없지만 존재하는 표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jam(즉흥연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재즈에선 뮤지션들의 ‘합’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고 각자의 파트가 무대에서 하나가 되는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요. 즉흥연주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생각이 그랬대요. 결국 고민을 하다가 ‘교감의 음악’으로 정리했어요. 저도 재즈 잼을 해본 건 아니지만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 블루스 잼은 많이 해봤거든요. 다른 세션들과 한 무대에서 합을 맞출 때 느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교감’인 것 같아요. 그 순간에 관객들도 교감을 하는 것 같고요.

<마일스>는 자타공인 마일스 데이비스 덕후인 돈 치들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예요. 아마 이 정도로 성의 있는 헌사는 많지 않을 거예요. 뭐니 뭐니 해도 덕후의 헌사처럼 정성스러운 게 없죠. 그래서 재즈 팬들에겐 더욱 깊은 선물이 될 작품이에요. 마지막 장면에 아주 대단한 gig이 하나 나오는데 그 무대의 세션들이 정말 어마어마해요. 허비 행콕, 에스파란자 스팔딩 같은 괴물 뮤지션들이 다 같이 나와서 연주를 하거든요. 다른 세션들도 유명 뮤지션일 것 같은데 제가 얼굴 아는 뮤지션은 둘이었어요.

연출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연출이 탄탄하고 독특해요. 내년에 개봉할 네이트 파커의 연출/주연 데뷔작 <국가의 탄생>도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마일스의 대사처럼 진짜 흑인들은 뭔가 특별한 걸 타고 나는 건지. 워낙 굵직한 영화들이 많아서 관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관객들이 꾸준히 찾아주시면 그만큼 많은 곳에서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많이들 찾아주시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8월 10일입니다. 시원한 저녁에 쿨 재즈의 조상님을 만나러 오시죠.

*도움주신 배순탁 작가님, 차우진 평론가님, 황덕호 평론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