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엔 더 좋은 자막이 실린다?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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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엔 더 좋은 자막이 실린다?

블루레이엔 더 좋은 자막이 실린다?

요새 블루레이로 제작되는 제 작품들은 대부분 제가 따로 요청해서 대본을 재감수합니다. 극장 상영이 끝나고 블루레이로 들어가면서 수정할 짬이 나기 때문에 그간 들어온 관객들의 피드백이나 제가 찾아낸 아쉬운 점들을 반영하고 오류들을 수정해요. IPTV나 VOD로 들어갈 때도 모두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가 모르는 새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판권과 영상만 넘기면 끝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넘어가서 상영됩니다. 요즘은 극장 상영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IPTV로 뜨기 때문에 더욱 수정할 짬을 내기가 어렵죠.

그런데 블루레이는 달라요. 일단 아트웍부터 부가 영상 등등의 제작 기간이 몇 달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대본을 수정할 여유가 납니다. 지금까지는 블루레이도 극장 번역을 그대로 쓰는 게 보통이었어요. 플레인아카이브에서 출시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경우는 예외죠. 관객들의 요구가 강해서 전면 번역, 전면 재감수를 한 작품이거든요.

최근에 <월플라워>, <시카리오>, <러덜리스>, <스포트라이트> 등의 자막을 블루레이 제작 업체에 재검수해서 보냈어요. 블루레이 업체에서 의뢰가 온다기보다 제가 개인적으로 어디서 제작하는지 수배해서 다시 봐드리는 수준이에요. 극장 상영 중에 보면 또 아쉬운 구석이 늘 있거든요. 상영 기간에 관객들에게 들어온 피드백들도 있고.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자막을 전체적으로 다시 손보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좋아요. 마음의 빚을 던 기분이랄까? 제작을 마치면 샘플로 주시는 경우는 있지만 따로 보수를 받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

책은 1쇄, 2쇄, 3쇄를 거치면서 오타나 오역 같이 새로 발견된 오류들을 수정하지만 영화는 그럴 기회가 없어요.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자막은 마지막으로 감수해서 넘긴 최종 자막본뿐이죠. 그 후로 발견된 오류를 수정해서 다시 극장에서 보여드릴 수가 없어요. 그런 점은 출판 번역에 비해 태생적으로 불리해요. 그래서 블루레이 자막을 수정할 수 있다는 건 영화 번역가에게도 second chance가 생기는 셈이에요. 참 고마운 기회죠. <월플라워> 같은 경우는 워낙 초기에 작업한 작품이라 아쉬움이 컸고 꼭 고치고 싶은 대사가 있어서 몇 년째 마음의 짐을 갖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블루레이에서 고치면서 너무 기뻤어요.

 

블루레이 같은 물리 매체의 시대는 스트리밍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많이 저물어 가고 있지만 블루레이 제작사들은 물리 매체만의 메리트들을 꾸준히 개발해서 구매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작품은 커버 아트웍 하나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들게 할 정도죠.

요새 블루레이 자막을 다시 손봐서 드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자막의 완성도도 블루레이를 소장할 이유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책의 경우도 1쇄에 오류가 있으면 소비자들은 굳이 뒤져서라도 2쇄를 사려고 하니까요. 제 경우 블로그에서 관객들의 피드백을 메일로 받고 있는데 극장 종영할 때쯤이면 제가 상상도 못 하던 자막 내 오류들을 많이 알게 돼요. 그러면 마냥 아쉬울 뿐이죠. 극장 자막에서 제대로 못 보여드렸다는 게. 이게 위에서 말씀드린 1쇄가 마지막 쇄가 되는 영화 자막의 한계이기도 해요. 이런 피드백과 더불어 제가 아쉽다 느낀 부분들, 찾아낸 오류들을 종합해서 자막을 다듬으면 분명 상영관 자막보다는 완성도가 올라가요. 어쨌건 2쇄니까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제가 번역하는 작품은 선이 닿는다면 최대한 블루레이 제작사에 요청해서 제작 전에 자막을 손보려고 해요. 블루레이에 더 완성도 높은 자막이 실린다는 메리트가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져서 미약하게나마 물리 매체 시장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작품을 정말 아끼는 관객이라면 더 좋아진 자막이 실린 블루레이를 구입해 주십사 하는 바람으로.

<스포트라이트> 블루레이 자막도 관객들의 피드백들 덕분에 여러 오류를 수정했어요. 이 기회를 빌어 좋은 피드백을 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답변을 일일이 드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는 <캐롤>도 개인적인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오류 수정은 물론이고 전보다 많이 다듬어서 드릴 거예요. 꼭 더 좋은 자막으로 보여 드릴게요. 기대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