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MIA MADRE) -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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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MIA MADRE) – 번역 후기

나의 어머니 (MIA MADRE) – 번역 후기

<나의 어머니> 번역 후기는 사적인 얘기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소연 같은 글이라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온전히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셨던 분들은 밑으로 쭉 내리셔서 마지막 문단만 보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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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스샷은 7월 2일에 제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에요. 저 글을 쓸 당시만 해도 <나의 어머니>가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줄 몰랐습니다. 병상에 누운 부모와 곁을 지키는 자식들의 심리와 행동, 너무 사실적, 세부적으로 묘사해서 본인의 경험이 아니면 이 정도 연출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만 했을 뿐이죠.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정말 대단해요.

 

제가 이렇게 감정이입이 크게 됐던 이유가 있어요. 올해 5월에 아버지께서 자동차 추돌사고로 돌아가시고 조수석에 타고 계시던 어머니는 심한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전신마취 골절 수술만 두 번을 받으셨어요. 중환자실에 20일 정도 계셨는데 정말 피가 마르더라고요. 하루에 면회도 30분 밖에 안 시켜주고 수술 들어갈 때마다 무섭고 언제 병원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하루종일 불안하고. 지금은 다행히 몸은 많이 나으셨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시느라 아직 병원에 계십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저도 일상으로 돌아와 있고요.

당연히 <나의 어머니>를 작업하던 당시에도 어머니께서 병상에 계셨습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영화 속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는 ‘아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얼마나 겹쳐 보이던지. 그 침대 옆에서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자식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그 심정이라는 게 굉장히 복잡미묘합니다. 심지어는 아파서 말도 못 하고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무심결에 화를 낼 때도 있었어요.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선 안 되는 대상에게 쏟는 짓까지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또 자책하고 한숨 쉬다 몰래 울다 마음 다잡다… 굉장히 힘든 경험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더욱 힘들었죠. 하긴 이 작품의 일정은 그나마 양반이고 하필 발인 다음 날 마감이던 작품도 있었어요. 저 때문에 미뤄질 순 없는 거라 꾸역꾸역 했죠. 하다 울다 하다 울다. 그땐 무슨 정신에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작업 중에 공감되는 장면과 대사가 정말 많아서 작업 중간 중간 멈추고 멍하니 있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울컥했던 장면도 있었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딸인 마르게리타는 엄마에게 반말을 해요. 아들 지오반니는 존댓말을 위주로 하고. 이건 제 경험에서 비롯된 설정이기도 해요. 제가 듣기에 다 큰 딸(중년)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말은 ‘어머니’보다 울림이 큰 것 같아요. 저희 누나가 병상에 있는 어머니 옆에서 “엄마” 하고 부를 때, 우리 어머니가, 생사의 기로에 있는 딸을 보시겠다고 먼 길 오신 외할머니를 “엄마” 하고 부를 때. 이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딸은 엄마에게 아들이 주지 못 하는 종류의 위안을 주는 존재구나 싶어요. 제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중년의 딸이 어머니에게 절친한 친구처럼 편히 말을 하고 “엄마, 엄마”하고 부를 땐 “어머니” 하고 극존칭을 쓰는 것보다 훨씬 다정해 보이거든요. 아들은 조금 달라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계시면 측은하고 가슴이 아픈 것보다 이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한없이 약하고 위태로운 존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하는 대상. 그래서 잘 울지도 못 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도 않아요. <나의 어머니> 속 아들 지오반니도 비슷합니다.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죠. 번역상에서 지오반니는 어머니에게 대체적으로 존대를 하는 설정입니다. 무조건 극존대는 아니고 살짝살짝 반말을 섞어요. 제가 조금 그렇거든요. 그게 더 다정해 보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마르게리타처럼 엄마에게 친구처럼 말하는 설정을 하려고 했는데 지오반니의 외모도 그렇고…(수염이 덥수룩한 엄청 진중한 상이죠;) 도저히 어머니에게 늘상 말을 편하게 하는 설정으로 하긴 어렵더라고요.

 

대사 자체가 전부 이탈리아어고 드문드문 영어가 있습니다. 중역이죠. 저는 이탈리아어는 모르거든요. 영문 대본을 보고 작업을 하는데 역시나 영문 대본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나의 어머니>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비영어권 작품의 영어 대본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영문 대본만 보고 작업했다간 오역이 나오기 십상이에요. 그렇다고 이탈리아어 전공자에게 대본을 통째로 맡길 수도 없습니다. 비용과 시간, 일정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환경에서 그나마 오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문맥을 보는 겁니다. 영문 대본을 쭉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대사가 툭 튀어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한국어 자막을 감수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쭉 훑다가 어? 하고 막히는 부분은 원어 대본을 살피면 오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영문 대사가 이해도 안 되고 뜬금없을 때 이탈리아어 대본을 뒤집니다. 그 대사를 찾으려면 또 한참을 뒤져야 해요. 저는 이탈리아어를 모르니까 단어든 문장이든 구글 번역기에 붙이고, 이탈리아어 사전에 찾고 해 가면서 어떤 부분의 대사인지 찾는 거죠. 그렇게 간신히 대사를 찾으면 이탈리아어 전공자에게 따로 물어보기도 하고, 단어를 하나하나 뒤져보기도 하면서 원뜻을 찾습니다. 이게 미련한 짓 같이 보여도 중역에서 ‘그나마’ 오역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최근에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_-;;) 작품을 연달아 작업했습니다. 적어도 프랑스어는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온갖 언어가 다 덤비는 영화판이라 이럴 땐 참 안타까워요. 저도 한 15개 언어쯤 하는 언어 천재였으면… 실제로 제 지인 중에 열댓 개 언어를 하시는 분도 있거든요. 열댓 개가 뭐야… 몇 십개 하실걸요.(이런 분들은 괴물이고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작업도 잘 끝나고 이제 8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보시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쯤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어느 분이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일생에 한 번은 마주할 어느날’이란 카피가 정말 가슴에 박힙니다. 제 영화가 아니더라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어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