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셰프 -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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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셰프 – 번역 후기

아메리칸셰프 – 번역 후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가 처음 한 말이 이거였어요.

진짜 힘들었겠다

아내도 저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보면 알거든요.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디가 힘들었는지. 아메리칸셰프는 대사가 꽤 많습니다. 보통 캐릭터가 살아 있는 작품들이 대사가 많아요. <아메리칸허슬>(얘도 아메리칸이네…), <프란시스 하> 같은 경우도 캐릭터 위주의 작품이라 대사가 꽤 많았어요. <아메리칸셰프>는 작업하면서 한편으로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가독성을 따진다고 대사를 이리저리 가지치자니 재미가 반으로 줄고, 다 쓰자니 대책 없이 많고. 그 타협점을 찾는 게 어려워서 걱정이 많았어요. 관객들이 자막을 다 못 보면 어쩌나. 혹은 자막 읽느라 화면을 다 놓치면 어쩌나.

근데 자막을 입힌 스크리너를 봤더니 아… 자막이 엄청 잘 보이는 거예요. 제가 잘했다기보다 자막 입히는 분의 솜씨가 기가 막혔어요. 싱크도 칼 같고, 넣고 빠지는 부분(duration)도 어쩜 그렇게 노련하게 맞추셨는지 그 많은 대사가 눈에 다 들어오더라구요. 참 감사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어느 업체인지까지 여쭤봤는데 필름 작업부터 해 왔던 굉장히 오래된 업체더라구요.

 

이번엔 자막이 너무 가볍게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코미디 영화는 아무래도 자막을 막 지르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요즘 들어 자막의 무게에 대해 생각이 바뀌고 있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요. 이 부분은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포스팅을 따로 올릴게요.

일단 대사량도 대사량이지만 요리에 대한 영화니까 레시피는 정확해야겠죠. 근데 표현이 두리뭉실해서 정확히 모르겠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정확해야 하는 문장인데 A로도 B로도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일 땐 고민이 큽니다. 다행히 레이먼킴 셰프님께 여쭤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서 몇 가지 여쭈면서 작업했어요. 근데 셰프님도 조심스러우시더라구요. 셰프들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게 정답이다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정성껏 잘 가르쳐 주셔서 덕분에 아주 흡족스럽게 잘 처리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__)

고생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재밌게 봐 주셨으면 해요. 사실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영화라 -_-;; 연인, 가족, 친구 누구와 봐도 재미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확인해 보세요. www.rottentomatoes.com fresh 지수 88%로 certified. 네이버, 다음, 왓챠 등등 최고 평점을 달리고 있습니다. 재미 없으면 와서 멱살 잡으세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영화를 검색하면 후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시사회를 하기도 전부터 엄청나게 많았죠. 그 분들이 전부 비행기에서 보신 게 아닐 거라 생각해요.(여객기에서는 몇 달 전부터 서비스했습니다. – 제 자막은 아니지만 – )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파일을 봤다는 걸 명시하고도 아주 당당하게 리뷰를 작성하고 별점을 매기고 하는 걸 보면 한편으론 어이가 없습니다. A라는 빵집에서 빵을 훔쳐다 먹었는데 그게 맛 있더라, 맛 없더라 내가 도둑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할 건 없지 않나 싶어요.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왜 모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제일 눈에 거슬리는 댓글이 개봉도 안 한 영화 관련 글에 “아, 봤는데 볼만 해요”. “그거 돈 낭비예요” 등등 도둑질로 먼저 보고 젠체하는 글이에요. 어차피 이렇게 보는 분들의 대부분은 애초에 작품을 극장에서 볼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안 하는데 그냥 조용히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문화 소비는 양심적으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정 어렵거든 조용히 보시면 되구요.

제 자막이 완벽하진 않아요. 아무리 공들여 작업해도 다시 보고 나면 아쉽고 틀린 부분도 보이고. 그래도 관객들에게 최고의 영화 감상 여건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고심하며 최선을 다한 자막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시더라도 자막에 따라 느끼는 바와 보이는 바가 크게 다릅니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번 영화관을 찾아 주세요.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영화관에서의 재관람을 후회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작업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