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을 번역하다 - 인사이드 르윈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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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을 번역하다 – 인사이드 르윈 –

장면을 번역하다 – 인사이드 르윈 –

아직까지도 가끔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인사이드 르윈>에 대한 질문인데요. 꽤 지난 작품이지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 기회에 글로 남길까 합니다.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대사가 두 개예요. 하나는 씨네21 인터뷰에서 말씀을 드리기도 했는데 이게 와전된 것도 있고 이참에 정리할겸 다시 쓸게요.

 

1. 르윈이 가스등 카페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하는 말이에요.

feeee

If it’s never new and it doesn’t get old, it’s a folk song.

포크송이란 게
그놈이 그놈이죠

제 자막은 이렇게 나갔습니다. 이 번역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고 본 뜻과 너무 다르다는 의견들도 봤습니다. 직역을 하자면 “새롭지도 않고 낡지도 않은 것, 그것이 포크송이다.” 이렇게 되는데요. 사실 이 대사는 처음 작업할 때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멋있는 말을 쓰고 싶었거든요. 여담이지만 저는 통기타를 고1 때부터 쳤으니까 20년 가까이 쳤어요.  포크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김광석 노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곡들을 악보 없이 치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제 젊은 시절을 같이 한 음악이기 때문에 포크 음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더욱 멋진 말을 쓰고 싶었지만 이 장면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아요. 르윈이 이 대사를 하면 카페에 웃음소리가 퍼지고 르윈도 슬쩍 웃죠. 그렇다면 영어를 몰라도 이 대사는 뭔가 유머러스한 대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장면에서 진지하게 “새롭지도 않고 낡지도 않은 것, 그것이 포크송이다.” 이런 대사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 말을 듣고 웃는 사람이 있다면 웃음웃음 열매를 잘못 드신 분이겠죠. -_-;; 포크 음악을 오래 듣고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워낙 단순한 코드 진행에, 기교도 별로 없는 연주를 위주로 하는 장르라 같은 뮤지션의 앨범을 몇 개 연속 재생해서 듣다 보면 정말 그놈이 그놈으로 들립니다. 포크 음악을 오래 즐겼기 때문일까요. 저는 이 대사의 뉘앙스가 거의 1:1 매칭이 될 정도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유머러스하면서도 멋진 말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제가 이렇게 부족해요. 🙂

 

2. 르윈이 모욕한 여자의 남편에게 맞고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에요.

fazz

Au revoir!

잘 가슈!

이 대사는 저도 아쉬움이 남은 부분이에요. 르윈이 정체 불명의 남자에게 맞고도 “Au revoir!”라는 인사를 던집니다.  직역하면 ‘또 보자’란 말인데 저는 그냥 “잘 가슈”라고만 썼어요. 개봉 후 이 대사를 지적하는 몇몇 관객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또 봅시다”라고 썼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라구요. 자길 때린 남자에게 또 보자고 하는 건 의미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씨네21 인터뷰에 이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더니 어디선가 게시판에 그런 글이 올라왔더군요.

인사이드 르윈 번역가가 인정한 오역

으헉;; 깜짝 놀랐습니다. 이래서 말은 조심해서 하라고 우리 어무니가… 아무튼 ‘오역 인정이다’처럼 거창한 건 아니고 아쉬움이 남을 뿐이에요. “잘 가슈”로 쓰든 “또 봅시다”로 쓰든 번역가의 선택에 따른 결과고 어느 쪽으로 번역해도 틀린 번역은 아니에요. 프랑스에서 공부하신 지인이 프랑스 친구에게 물어보셨다고. 듣기론 ‘Au revoir’도 별뜻 없이 통상적으로 쓰는 인사말이라 딱히 말뜻 그대로 해석할 건 없다고 했다더군요. 우리말에서 ‘안녕히 가세요’가 헤어질 때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지 말뜻 그대로 안녕하게 가라는 말은 아니잖아요. 물론 제게 다시 이 대사를 번역할 기회가 생긴다면 “또 봅시다”로 쓸 겁니다. “잘 가슈”가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또 봅시다”보다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까칠한 코엔 감독의 유머라거나 르윈의 피식 웃음이라거나 하는 대사 외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저 역시 그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장면을 번역하다

1, 2번 예에서 보셨겠지만 영화 번역은 대사만 그대로 번역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번역 작가에겐 대사가 아니라 그 장면을 번역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 장면에서 캐릭터가 혹은 연출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캐릭터가 처한 상황, 캐릭터들의 반응, 캐릭터의 성격까지 반영해서 대사를 옮겨야 합니다. 대사가 아니라 장면을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거죠. 1번을 예로 들자면 카페의 손님들이 왜 웃는지를, <인사이드 르윈>의 관객들이 자막을 보고 납득하도록 만드는 게 제 임무입니다. 그 기본적인 역할에 실패하면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 거죠. 뭐가 정답이다 똑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제가 지향하는 자막은 그래요. 한국 관객들도 외화를 볼 때 외국인 관객들과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요. 전에 아메리칸허슬 관련 글에서 어느 관객 분과 댓글로 얘길 하다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극장 앞자리에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인지 외국인인지 앉았는데 나와 다른 타이밍에 박장대소를 하더라. 나는 영어를 잘 못 해도 외화를 참 좋아하는데 이런 경우를 만나면 웬지 소외감 같은 것도 느끼고 보는 내내 위축되더라.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이 웃고 싶다.

이 말이 아직도 맘에 박혀요.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자막의 문화 코드를 100% 맞출 순 없겠지만 앞으로 많이 노력하면 100%에 접근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까지 많이 응원해 주세요. 정말 자막 깎는 노인이 되면 그때쯤 가능할지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