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허슬 번역 후기 & 자막 A/S 조공 - 황석희의 영상번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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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허슬 번역 후기 & 자막 A/S 조공

아메리칸허슬 번역 후기 & 자막 A/S 조공

 

아메리칸허슬은 지금껏 제 번역 인생 중에 제일 힘든 작품이었어요. 심지어 뉴스룸보다 힘들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대사가… 말도 안 되게 많습니다. 그것도 하나 같이 위트가 철철 넘치는 대사들이라 함부로 누락하기도 뭐한… -_-;; 번역을 세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재번역을 두 번 했거든요. 거의 처음부터 다 뒤집었어요. 제가 받은 대본은 대사들이 summary 수준이었고 캐릭터들은 작정을 한 것처럼 애드립을 뱉어냈어요.(브래들리 쿠퍼의 혀를 뽑아서 채를 썰고 싶었어요) 당연히 대본에 누락된 대사가 말도 안 되게 많았구요. 그 상태로 번역을 했는데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다시 보니 누락된 대사가 워낙 많고 캐릭터는 쉬지 않고 중얼대서 화면과 자막의 이질감이 컸습니다.

혹시나 제가 이런 말해서 지레 겁먹는 분이 계실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자막 읽다 지치는 영화는 아니라는 거. 제가 근 1년간 본 코미디 영화 중에 가장 빵터지는 영화라는 거 말씀드립니다.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 가볍게 빵빵 웃으면서 보고 나오실 수 있는 영화예요. 대사 많다고 겁먹을 건 전혀 없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갈등의 갈등을 하다가 자막 파일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영화 다운 받아 보실 때 있는 자막 파일 있죠? SMI라거나 SRT라거나.(불법다운은 범죄인 거 아시죠? -_-) 자막 파일을 만들어서 화면에 자막을 붙여봤어요. 저야 케이블 작업을 워낙 오래해서 자막 파일은 지겹게 만들어 봤습니다. 이럴 때 참 도움이 되네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처럼 화면에 자막을 띄워서 바로 확인하면서 재번역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재번역이 두 번 있었거든요. 자막과 화면이 너무 안 붙어서 반 이상을 뜯어 고치고 누락돼서 대본에 없던 대사도 어지간한 건 듣고 넣었어요. 빠지니까 어색해서 안 되겠더라구요. 이게 어느 정도 개고생이냐면… ㅠㅠ 2천 개가 넘는 자막을 하나하나 TC(time code)를 설정하고 캐릭터의 대사와 싱크를 맞춰야 합니다. 단순히 싱크만 맞추는 데도 반나절이 훌쩍 넘게 걸렸습니다.

 

그렇게 피드백을 교환하고 수정하고 하면서 드디어 최종 대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특이하게 자막을 넣는 업체로 와 주실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워낙 대사가 날아다니고 요란하다 보니 싱크를 맞추시면서도 힘드신 모양이더라구요. 저도 자막 업체까지 가서 같이 자막을 확인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작업실에 앉아서 영화를 쭉 보면서 싱크를 확인하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면 옆에 앉아 계시던 편집자 분이 실시간으로 수정하시는 거죠. 이때도 제가 보낸 최종 자막과 틀린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A의 대사를 B가 하고 있다거나 세 마디를 말했는데 자막은 첫 마디째 그대로 있다거나. 이 부분을 또 하나하나 찾아서 다 수정했습니다. 바빠서 못 갈 뻔했는데 못 갔으면 난리 났을 거 같은;; 영화가 2시간 넘는 건 아시죠? ㅠㅠ…

아무튼 이렇게 아메리칸허슬의 자막이 탄생했습니다. 영화사의 담당 직원 분이 좋은 아이디어들을 주셔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끝나니까 뿌듯하더라구요. 진짜 작업 중반부쯤엔 오기가 생길 정도였거든요. 자막 파일도 오기로 만들었어요. 어지간하면 저런 짓까진 안 하는데…

 

데이빗 오 러셀 감독은 작품마다 늘 미는 대사가 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구요. 그 부분들에 신경을 쓰느라 골치가 더 아픈 것도 있었고(꼭 반복해서 계속 쓰거든요) 어려운 대사도 많았어요. 마지막 대사는 솔직히 제가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래서 번역가 분들이 모인 네트워크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와… 해석이 다 다르시더라구요. 오죽하면 외국인 영화 감독님에게도 물어봤어요. 이분의 해석을 듣고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는데 그래도 완벽하겐 모르겠더라구요. 외국 포럼을 뒤져도 그 대사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고. 원래 제가 이해 못 하는 자막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쓴놈도 뜻을 모르고 썼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알까 싶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풀어 쓸까 하다가 거의 직역으로 썼습니다. 대사의 의미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연출자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 못 한 상황에서 번역가가 자의적인 해석을 들이미는 건 오만하고 위험한 방향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부디 재밌게 해석하시고 좋은 의미들을 찾으셨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번역작가 최초로 영화 자막 A/S를 제공해드립니다. ㅋㅋㅋ.  아메리칸허슬의 첫 장면에 크리스천 베일이 탈모를 감추려고 머리를 손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라디오 뉴스가 쉴 틈 없이 흘러나오죠. 원래 이 부분도 자막이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 자막이라 화면에서 거의 사라지질 않고 계속 나와서 관객들이 크리스천 베일의 행동이나 표정을 못 보시겠더라구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못 보신 분들은 해당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이 부분이 정말 웃기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영화 전체로 따졌을 땐 아주 중요한 메타포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영화사에 의견을 드렸어요. 아예 이 부분 자막을 다 뺐으면 좋겠다고. 내용상 그리 중요한 자막도 아니고 이 자막 한 줄 읽느니 캐릭터의 표정을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 판단했거든요. 뉴스의 내용은 당시 시대상을 보여 주는 소식들이에요. 그래도 나름 고생해서 작업한 자막이라 빼자고 의견을 드리면서도 맘 한구석이 쓰렸어요(아주 몹시 많이 매우) -_-;;

그래도 궁금한 분들이 당연히 있을 거란 생각에 아래 누락한 자막을 적어 드립니다. 서비스 정신 쥑이죠? -_- ; 영화를 보신 분들도, 보러 가실 분들도 한번 보시면 좋을 거예요. 스포가 될지 몰라서 안 쓸까 했는데 마침 영화사에서 오프닝 영상을 공개하셨네요. 부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같은 날 개봉한 폼페이도 좀 팍팍 봐주세요. 화산으로 스트레스도 좀 날리시고 넵?!)

5시 뉴스를
전해 드립니다

코흐 시장은 노조와의
협상 재개를 당부하며

노조의 양보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PBA교섭인은
봉급 인상을 요구했고

나소에선 아기를 유기한
미혼모가 체포됐습니다

한 전범이 추방 전에
출두명령을 받았으며

대통령의 친중동 행보가
국회의 반발을 샀습니다

24시간 생생한 뉴스
WINS입니다

 WINS 5시 2분
뉴스입니다

시와 노조의 협상이
잠정 중단되었고

양측의 고성이
오가고 있습니다

노조는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터무니없는 제안이라
시를 비난했습니다

경찰 노조와
소방관 노조는

이번 연합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찰 노조 위원장은
증원을 요구했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뉴욕 시 발표에 따르면

2월까지 2~5백만 불
적자를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