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더스 게임(Ender's game)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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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Ender’s game) 번역 후기

엔더스 게임(Ender’s game) 번역 후기

엔더스 게임은 원작이 워낙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터라 제작 단계부터 많은 우려와 걱정을 샀던 작품입니다. 훌륭한 원작을 영화로 망치는 경우가 워낙 흔하기 때문일 거예요. 좋은 작품이 영화에서 망가지면 원작 팬들도 영화 팬들도 일치단결해서 썩은 토마토를 던지고 영화는 쫄딱 망하는 상황까지 이어지죠. 엔더스 게임도 똑같은 걱정을 샀던 작품이라 저도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단 영화에 대한 간단한 평은 뒤로 미루고 번역 관련한 얘기부터 해 볼게요. 이렇게 원작이 있는 영화는(특히나 원작이 유명한 영화) 번역 전에 반드시 원작을 읽어야 합니다. 원작이 장편 10권 뙇! 이렇다면 또 몰라도 -_-;; 어지간 해선 원작을 읽고 작업을 해야 원작 팬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를 오역도 피할 수 있고요. 안 그래도 책을 사려던 참인데 이번엔 회사에서 책을 미리 보내주셨어요. 덕분에 작업 전에 재밌게 봤습니다. 번역도 잘 돼 있어서 페이지를 술술 넘기며 봤어요. 딱히 어려운 용어나 고유명사들이 있진 않았습니다. 다행이죠.

엔더스 게임 번역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아이들의 말투 부분이에요. 날 때부터 전쟁을 위해 키워지는 아이들이라 굉장히 똑똑하고(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천재들이에요) 논리적이고 차가운 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전투학교, 지휘학교 같은 곳에 들어가서 군인처럼 부대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나까’와 같은 군대식 어투를 씁니다.

그럼 고민할 것 없이 군대식 어투를 쓰면 될 거 아니냐. 뭐가 고민인데?

아무리 천재들이고 군대에 있다고 해도 애들은 애들이거든요.  엔더도 가끔은 떼를 쓰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겁에 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업 중에도 엔더가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부분의 대사들은 ‘다나까’가 아닌 ‘~요, ~죠’와 같은 일상 어투를 사용했습니다.

그외 나머지는 딱히 힘든 부분이 없습니다.  군용어가 난무하는 작품도 아니고(관객층을 고려해서인지 원작보다 군용어가 덜 나옵니다) – 사실 군용어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BOB와 퍼시픽을 작업하면서 군용어엔 이골이 났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 군사 용어엔 자신이 있거든요. BOB 번역후기 참조, 퍼시픽 번역후기 참조– 대부분의 영화화 작품이 그렇듯이 원작 소설처럼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대사도 그리 많진 않습니다.

영화평은 아직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라 조심스럽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제가 그나마 객관적으로 영화의 재미를 말할 때 두는 기준이 딱 하나 있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추천할 수 없느냐, 추천할 수 있느냐?” 엔더스 게임은 확실히 후자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어린 관객들이 보면 우주 함대를 지휘하는 꼬마 영웅의 이야기로 보일 것이고 성인 관객들이 보면 화려한 볼거리 속에서 이런저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원작의 재미를 100% 살렸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저는 약은 팔지 않습니다 -_-) 원작의 재미를 100% 살릴 수 있는 영화화 작품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하지만 원작 팬들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가 잘 나왔습니다. 스크리너치곤 비교적 양호한 화질로 열댓 번을 봤습니다만 큰 화면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예요. 사실 제가 작업하고도 극장에서 안 보는 작품들이 있긴 합니다. 이미 작업하면서 질리게 보기도 했고 딱히 재미가 없는 작품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엔더스 게임은 꼭 개봉하면 큰 화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가려고요. 가능하면 아이맥스나 M관(일산은 M2관이… ㅠㅠ)에서.

12월 중 개봉합니다. 광고처럼 아이맥스에서 개봉했으면 좋겠는데 이쪽은 비즈니스라 저는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릅니다. 아무튼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