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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의 의도와 자막 #1

연출자의 의도와 자막 #1

영화를 번역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걸 딱 하나만 고르라면 “연출자의 의도”예요. 번역가는 전달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연출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하늘이 내린 독심술사쯤 된다면 모를까 누군가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최근에 <리틀 드러머 걸>을 작업하면서 박찬욱 감독님과 자막을 같이 검토하면서도 전달자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원작 연출자와 같이 작업한 게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 횟수가 늘수록 번역가가 연출자의 의도를 얼마큼 희석하는지, 또 얼마큼 왜곡하는지를 더 많이 실감하게 됩니다.

작자의 손을 떠난 작품은 해석, 소비하는 주체에 따라 나름의 문맥을 갖게 되고 그 문맥 속에서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흥미로운 의미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그것도 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가능성이니까요. 그래서 번역가 중에는(출판 번역가 포함) 번역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해석을 중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출판 번역에선 아예 문장이나 문단의 순서를 바꾸거나 내용을 임의로 편집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이렇게 과한 수정은 대부분 원작자의 허락을 거쳐서 이뤄지고요.

영화 번역도 일본의 경우 자막 표현이 굉장히 과하죠. 의역이라기보단 “다시 쓰기”의 영역이라고 봐도 될 거예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카사블랑카>의 대사 “here looking at you kid”는 한국 자막으로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죠. 이 대사는 일본 자막인 “君の瞳に乾杯(그대의 눈동자에 건배)”을 한국어로 직역한 거예요. 저 시절엔 미국에서 영화가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는 예가 많아서 영어가 아니라 일어를 중역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사실 “here looking at you kid”를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라고 번역하면 너무 지나친 해석이긴 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tomorrow is another day”는 한국어 자막으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일본어 자막 “明日は明日の風が吹く(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와 아주 유사한데요. 당시 번역가가 일어 자막을 참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가 일본을 통해 수입되던 시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추정은 가능합니다.

<프로메테우스 2012>의 한국어 자막을 보면 “Big Things Have Small Beginnings”라는 대사가 “작은 물줄기가 강물이 되리라”로 나옵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던 자막이기도 한데요. 유사한 성경 구절의 뉘앙스를 넣어야 한다, 자막이 과하다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훌륭한 번역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이런 자막들을 볼 때면 온갖 생각들이 다 들어요.

  • “저런 건 연출자의 의도에 얼마큼 접근한 것일까?”
  • “만약 연출자의 의도와 많이 다르더라도 그 나라의 관객들에게 모국어만큼 어필할 수 있는 자막이면 의도를 훼손하는 건 이해가 되는걸까?”
  • “직관성과 전달력을 포기하고서라도 원문을 살려야 하는 것이 옳은가?”
  • “애초에 연출자의 의도를 읽는다는 것은 가능한 영역일까?”
  •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연출자의 의도를 모두 읽을 수 있나?”

 

작의 연출자들과 작업할 기회들이 생기다 보니 답도 없는 질문에 고민만 더 늘어요. 그런 고민은 늘 “관객이 원하는 걸 뭘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데요. 관객들은 정말 변덕스러워요. 과한 해석이라도 잘 맞아떨어지는 자막엔 굉장히 호의적이고 정확한 해석이라도 문장이 딱딱하다 싶으면 냉랭하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 딱 떨어지는 기준이 있다기보다 “잘한 자막이 잘한 자막이다”라는 건데요. 과한 자막이든 딱딱한 자막이든 심지어 유행어가 도배된 자막이든 그 장면에서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으면 잘한 자막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요. 

사고의 흐름이 이런 식으로 가면 “관객이 좋아하는 자막이 좋은 자막이다”라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죠. 이런 결론에 도달하면 한편으론 너무 무책임한 소리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또 사고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잡히지도 않는 “연출자의 의도”라는 걸 아득바득 읽어보려고 애쓰는 거죠.

저 위에 독심술사가 아니면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 건 불가능하다고 썼지만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는 단서들이 있어요. 특히나 연출자들과 작업하면서 대사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을 듣다보니 느낀 점들도 있고요.

원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번역 후기를 쓰려고 시작한 글인데 서문이 본문이 돼 버리는 바람에… 망했어요. -_- 삼천포로 빠졌다가 맨틀 뚫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렸는데… 번역 후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조만간 이번 글의 후속 글을 써볼게요. 후속 글에는 번역가가 연출자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서엔 뭐가 있는지, 그런 것들은 어떤 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지 얘기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