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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피드백을 못 받게 됐습니다.

번역 피드백을 못 받게 됐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건상 문제 때문에 당분간 번역 피드백을 못 받게 됐습니다.

관객과의 피드백 창구가 있다는 건 번역가로서 참 유익한 일이지만 장단점이 정말 뚜렷해요. 좋은 피드백도 들어오지만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악성 메시지들을 받거든요. 유익한 피드백과 악성 메시지의 비율은 대략 1:50 정도 돼요. 못된 메시지와 메일이 50통 들어올 때 유익한 피드백이 1개 들어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라도 건진 피드백은 정말 유용하긴 해요.

” SSN은 단추진기 함정(Single propeeller)이라 양현 앞으로 전속이라고 쓰는 것은 부적절. 아 해군 잠수함은 모터 앞으로 전속이라는 표현 사용.. 타각 지시도 SSN은 십자(+)형태의 수직 수평타를 가지고 있는데 양현 전타라는 표현은 맞지 않으며 키 왼편 전타 또는 키 오른편 전타 등이 맞습니다…”

윗 글은 최근 제가 번역한 <헌터킬러>에 관한 피드백입니다. 현재 잠수함에서 근무 중이신 영관급 장교분이 보내주셨어요.(작업 중에 찾을 땐 그렇게 없으시더니 흙흙…) 이런 멋진 피드백은 현업이 아니면 줄 수가 없는 거라 정말 흔치 않은 정보고 제게도 정말 귀한 재산이 되죠. 그밖에 <툴리> 자막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신 분도 계신데 그것도 참 좋았어요. 저도 그렇게 번역했으면 훨씬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답장도 그렇게 써드렸고요.

이런 값진 피드백도 있지만 온갖 욕설과 저주와 비아냥이 그 50배 이상 쏟아집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 사람들이 어지간히 분노할 대상이 필요하구나, 혹은 번역가를 네트워크 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로 생각하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험한 말을 피와 살로 돼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쓸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어느 정도 험한 말이냐면 차마 여기에 쓸 수가 없을 정도예요. 조사와 어미 빼고는 옮길 수가 없을 정도로 성적, 폭력적 혐오 표현이 가득해서 제 가족들이 보면 트라우마가 생길 글들.

물론 단순한 악성 메시지, 메일 말고도 오역 지적 글도 많이 옵니다. 그런데 한톨의 예의는커녕 번역가의 오역과 실수가 무슨 삼대를 멸해야 하는 반인륜적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과격한 말을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오역과 실수는 번역가가 죄송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고,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지 그것만으로 벌레나 쓰레기 취급을 받을 일이 아닙니다. 법이 바뀐 게 아니라면 그런 실수가 사람을 썰어서 돼지밥으로 뿌린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성격의 중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틀린 것 때문에 욕을 먹으면 틀려서 욕을 먹는구나 하기나 하지 완전히 오해해 놓고서 덮어놓고 그러는 분들도 많아요. 그럴 때면 그걸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그런 메일이나 메시지들을 보면 제가 머리를 밀고 사지를 자른 채 분신한 상태로 광화문 한복판에서 석고대죄를 해도 용서 안 해주실 분들 같아요. 과장이 아니라 그 정도로 표현의 강도가 셉니다. 오역과 실수, 이 얘기는 하도 해서 더 꺼내는 건 구차할 것 같아 여기까지하고 글을 링크하겠습니다.

영화 오역에 관한 고찰

 

번역 관련한 악성 메시지들 말고도 전혀 쓸데 없는 메시지들이 차고 넘치게 옵니다.

애비 뒤진 한남충이 어쩌니, 보빨 페미 새끼가 어쩌니. 키워드만 바꾸면 별반 차이도 없는 메시지들인데 제가 숨지길 그렇게나 기원하신다고들. 많이들 아시는 “The enemy’s enemy is my friend”라는 옛말이 있죠. 혹시나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황석희의 죽음을 기원하는 친목회라도 만드신다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기분으로 커피는 제가 쏘겠습니다. 카악퉤라떼 벤티로.

저 정도 귀여운 욕을 먹는 건 별 상관이 없어요. 기분이나 나쁘고 말겠죠. 그런데 가족을 건드린다거나 정말 도가 지나친 협박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 것들은 욕을 먹는 것과는 별개의 얘기예요. 설마 욕 좀 먹는 것과 가족 살해 협박 같은 것들을 같은 선상에 두시는 분은 없겠죠? 무슨 짓을 했건 가족 살해 협박을 당해도 마땅한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겁니다. 일일이 조치하려 해도 법적인 조치엔 한계가 있고 저도 피곤한 일이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고요.

요즘엔 현실보다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웃으며 칼침을 놓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깊게, 낄낄대고 조롱하면서.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번역 피드백을 받는 일은 당분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피드백을 받고, 반영하고 하는 과정은 관객분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들도 많아서 정말 좋아해요. 굉장히 즐거운 과정이에요. 마흔쯤 되면 굳이 개인이 찾아서 하기 전엔 배움이라는 행위를 경험하는 게 어렵거든요. 관객의 피드백을 받고, 번역을 수정하고, 몰랐던 것들을 공부하는 일. 관객들에게 배우는 일이 저는 참 재밌었어요.

그런데 요새 그나마 나아지던 공황 증세가 다시 심해져서요. 마음을 새까맣게 썩게 두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애초에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접근했구나 싶기도 하고요. 다시 각오가 서거나 필터링할 방법이 생길 때까진 이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요. 저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하니까요.

앞으로는 예전처럼 2차 판권 자막에 관객들이 주는 피드백을 반영하긴 어렵겠지만 작품들이 종영하면 제가 꼭 자막을 다시 받아서 꼼꼼하게 재검토하고 새로 찾아낸 오류들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지금 상태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 같아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피드백 접수를 그만두는 게 마음이 안 좋지만 이렇게 되다 보니 지금까지 메일과 메시지로 좋은 피드백을 보내주시고 애정이 담긴 좋은 소리, 쓴 소리 보내주신 많은 분들이 얼마나 감사한 분들이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고 전보다 한 치 나마 더 자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오늘 부로 피드백 접수 주소인 feedback@drugsub.net은 기능하지 않으며 페이스북 메시지도 받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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