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역에 관한 고찰

영화 오역에 관한 고찰

글에 앞서 부연하자면 두어 달 간 영화 번역 관련해서 인터뷰 요청이나 방송 출연 섭외를 어림잡아 20건 정도 받았어요. 워낙 이슈가 커서 기자분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거든요. 섭외를 모두 고사했고 번역 이슈 관련해서는 외부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번역 이슈라면 영화사와 논의해서 입장을 밝혔겠지만 다른 번역가의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 말하든 제가 탈고하지 않는 이상 발언이 왜곡되기 쉬워서 이런 민감한 주제는 인터뷰 자체를 피하는 편입니다. 아래 쓰는 글엔 제가 인터뷰를 했다면 했을 법한 이야기들도 일부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실 기자분들에게 민망하네요. 못 한다고 그렇게 빼더니 글 쓴다 하실까봐.

이 부박한 글이 번역계를 덮어놓고 두둔하는 글로 읽힐까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특정인에 대한 저격으로 읽힐까 걱정하는 마음도 큽니다. 최대한 오해 없이 전달되길 바랄 뿐입니다. 글이 워낙 길어서 연재를 할까 하다가 잘라 쓰면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아예 통째로 올립니다.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기도 하고 틈 나는 대로 관객들의 이해를 높여서 번역가와의 거리를 좁히는 게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해서 쓴 글입니다.

 

 

영화 오역에 관해.

 

1. 반역의 부수적 피해

 

“오역은 필연이다”라는 말에 “무책임한 말이다”라는 의견을 봤습니다. 수긍할 만한 지적이에요. 번역가가 저렇게 말한다면 누가 들어도 변명으로 들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번역계 외부에서 저런 말을 해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사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번역가뿐입니다. 오랜 번역 경험으로 번역이라는 행위의 한계를 최전선에서 체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령실의 장군은 고지 탈환이 가능하다 예측,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지만 최전선의 병사와 장교들은 명령 완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체감’합니다. 이 ‘체감’이라는 것은 경력 1~2년 혹은 10년, 20년 정도의 번역가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수천년 번역사(飜譯史)의 모든 번역가들이 부딪혀 왔고 고백해 온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번역에 관한 가장 흔히 아는 인용구로 “traduttore traditore”라는 말이 있죠.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인데요. 일부에서 뜻을 희한하게 해석해서 그렇지 저 말은 번역이 원문에 반기를 들어 원문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 번역하더라도 번역은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원문에 대한 반역(배신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 “번역 참 어렵고 더러버서 못해먹겠네”라고 느낀 어떤 번역가가 폼잡고 써 놓은 말이 아닐까… 하는. 광범위하게는 오역으로 지적되는 것의 일부는 반역의 과정에서 오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 젤다
I don’t know what they’re doing.
이게 다 뭐람

 

2) 젤다
Making a goddamn mess is what I think.
예수님도 여기선
미끄러지시겠네

 

3) 플레밍
Zelda! Stop that chatter, please.
젤다!
수다 그만 떨어

 

4) 젤다
Yes, sir.

 

5) 플레밍
There’s no call for the blasphemy.
불경한 말도
하지 말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 발췌한 자막입니다. 어떤 분이 오역이라고 지적하신 자막이기도 하죠. “Making a goddamn mess is what I think.”라는 문장엔 ‘예수’라는 단어가 없는데 “번역가가 마음대로 갖다붙인 것 아니냐. 원문과 아예 다르다”라는 의견인데요. 5번 대화를 보시면 blasphemy(신성모독, 불경)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대사 전에 신성모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플레밍은 2번 대사의 god-damn을 blasphemy라고 말한 것인데 god-damn은 한국어로 “빌어먹을, 맙소사” 정도로만 해석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자막에선 더 직접적으로 신성에 대한 모독이 되는 표현을 만들어 쓸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젤다가 저 문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바닥에 사방 지랄을 다 해놨네” 정도입니다. 연구원들이 물을 잔뜩 쏟아 놨거든요. 그걸 닦으며 하는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여기선 미끄러지시겠네”라는 표현을 쓸 여지가 생깁니다. 이 문장을 오역으로 지적하신 분은 뒤에 따라오는 문맥을 판단에 넣지 않으신 겁니다.

“in the last days of a fair prince’s reign.”라는 표현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옮겼던 것도 지적하셨는데 사실 저 표현은 영어권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며 의미만을 따졌을 때 한국에서 쉬이 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과 거의 1대 1로 상응합니다. 저 번역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있을 수 있을지언정 단순히 “틀렸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해당 번역문은 2차 판권에서 수정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의미가 틀려서가 아니라 뉘앙스 반영이 필요해서 수정했을 뿐입니다.
참조 : http://drugsub.net/archives/17158 

위 예시 두 가지는 어떤 소비자에겐 ‘반역에 기인한 부수적 피해’ 혹은 아예 오역으로 보일 것이고 어떤 소비자에겐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보일 겁니다. 저 예를 든 이유는 이런 번역의 타당성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역 제기’라는 행위는 단순히 문장만 보고 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번역은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제가 모든 오역 제기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이런 예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설명을 하면 보통은 “그럼 이건 그렇다치고 ㅇㅇ작품의 ㅇㅇ는요?”라는 질문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제 입장에서는 오역으로 지적될 것이 아님에도 지적된 것을 해명했는데 “아니면 됐고 다음 건?”의 반응이 흔하다는 거죠. A작품의 오역 지적을 해명하고 나면 B작품에 대한 오역 제기, B작품을 해명하면 C작품에 대한 오역 제기. 끝이 없어요. 물론 그 중에는 진짜 빼도 박도 못 하는 제 실수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때가 되면 오역을 제기한 분의 승리가 되는 걸까요?

문제는 이렇게 영어 문제 채점식의 번역 비평만 이어지면 번역가와 관객이 대립구도에 놓인다는 겁니다. 번역 배틀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옳은가를 끊임없이 따져 묻는 건 궁극적인 목적인 번역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번역가와 관객의 감정적인 소모전이 될뿐이죠.

전에 익스트림무비에서 아주 건전하고 좋은 과정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블레이드러너 2049>와 <셰이프 오브 워터>가 그 중 하나였는데요. 각각 관객분이 오역 및 소수자에 관한 용어 사용을 지적해 주셨고 개인적으로 확인한 결과 아주 타당한 지적이었어요. <블레이드러너 2049> 같은 경우는 오역이라고 할 순 없었는데 그때 들은 지적을 반영해서 블루레이 자막에 반영하기도 했죠. 그 관객분이 접근한 해석이 더 좋았거든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지적은 덕분에 장애인 표현에 대한 큰 공부가 됐습니다. 그 후 블루레이가 발매될 땐 지적받은 용어를 모두 수정했고요. 이렇게 문제가 제기되고 유의미한 담론이 오가고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가장 건전하고 훌륭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는 박박 우기고 관객은 번역가를 깔아뭉개고 서로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 시절은 끝났습니다.

정영목 번역가님의 최근 저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를 보면 저와 비슷한 입장의 주장이 나옵니다. 영어 시험 채점식의 1차원적인 번역 비평이 아니라 번역의 질적 가치를 논하는 비평이 필요하다는 점. 간단히 말해 “이 번역문의 가치는 어떠한가?”의 비평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죠. 어떤 번역이 더 좋은 것이며 어떤 번역을 지양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할 겁니다.

 

 

2. 명백한 오역

 

사실 관객들이 궁금해하시는 건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명백한 오역’에 관한 내용이겠죠? 위에 구구절절 반역이니 부수적 피해니 써놨지만 여러 상황에 따라 정역으로도 오역으로도 읽힐 수 있는 예 말고도 뻔히 보이는 명백한 오역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오역들이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게 봤을 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번역가가 원문을 잘못 봤을 때

palace를 place로 보거나 하는 예가 대표적이죠. 아니면 중요한 접속사나 전치사, 동사의 과거형등을 못 보고 지나쳐서 (대본에 없을 수도 있고요) 문장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 요소 때문에 문장의 뜻이 완전히 바뀌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이런 실수가 “번역가는 중학교도 안 나왔냐?” 식의 비판을 받기 딱 좋습니다.

 

둘째, 번역가가 해석에 실패했을 때.

원문을 제대로 봤지만 해석에 실패하는 경우를 프로 번역가들도 많이 겪습니다. 문장 해석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문맥 해석, 설정 해석(작품 배경, 캐릭터 등)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역가의 입장에선 이 실수가 가장 아프고 괴롭고 부끄럽죠. 첫 번째 실수처럼 문장을 잘못 봤다고 하고 지나갈 수 있는 성격의 실수가 아니라 실력 자체를 의심받을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에요. 저도 이런 실수를 몇 번인가 했는데 이런 실수를 지적받고 나면 그 자괴감을 가라앉히기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9회 말 쓰리 볼에 공을 패대기친다거나 축구 승부차기에서 승패가 갈리는 타이밍에 홈런을 날린다거나 하는 성격의 자괴감이에요. 내가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못했다는 자괴감이거든요.

 

 

3. 모든 영화엔 오역이 있나?

 

감히 말씀드리자면 모든 영화엔 오역이 있습니다. 더 넓게 말씀드리자면 모든 번역물(출판, 영상,전문 번역물)에는 오역이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 공문서에서도 오역이 발견됩니다. 제 주위에도 20~30년 번역하신 분들 많지만 내 책, 자막엔 오역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겸손이나 우려가 아니라 그간 최전선에서 싸워온 경험에 기인한 ‘체감’이 그렇게 말하는 거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제가 작업한 영화에서 오역을 지적당했다면 실수가 티가 났기 때문이고 지적당하지 않았다면 티가 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모든 번역가가, 혹은 인간이 그렇듯이 누구도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적게는 2개월에서 보통 3개월. 영화 한 편을 번역하는 데 적게는 5일에서 보통은 7일. 책을 3개월 작업해도 오역은 발생합니다. 그래서 2쇄, 3쇄를 거듭하며 오류를 수정하기도 하죠. 영화 자막은 그 점에 있어서 아주 불리해요. 책에 비해 분량이 적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7일을 번역해서 스크린에 올리는데 책처럼 2쇄, 3쇄 수정할 여지도 없죠. 단 한 번으로 평가받는 일이라 더 살 떨리는 일이에요.
(추가: 요즘은 시장 침체로 2쇄를 찍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출판 번역가도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 영화의 자막은 보통 1,200개. 조금 많다면 1,500개. 우디 앨런 수준으로 미친듯이 말이 많은 작품은 1,800개. 숫자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한 천상계 아론 소킨의 영화는 맨 앞자리가 3…입니다. 매 작품 이 정도 숫자를 7일만에 작업합니다. 보통 1,500개라고 했을 때 오역이 3개 정도 나온다면 오역 생산률이 0.2%라고 할 수 있죠. 2%가 아니라 0.2%입니다. 오역 하나에도 작품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단순 통계로 따질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수치는 이렇다는 거죠. “결과물은 오역 0%로 완전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0.2%의 오류도 허용할 수 없다는 말인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라는 건 아실 겁니다. 해외 OTT 서비스에서 허용하는 번역 오류율은 2%입니다. 2% 이상이면 번역 회사의 벤더(하청) 자격을 박탈하기도 하지만 2% 미만이면 본사에서도 납득합니다.

8~9년 전쯤 제가 케이블TV 방송만 번역하던 시절의 일화를 말씀드려 볼게요. FOX채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번역가가 담당하던 미드에 대한 오역 지적 글이 채널 사이트 게시판에 길게 올라왔습니다. 합당한 지적이었죠. 그런데 오역 지적을 이런 식으로 직접 받는다는 건 전례가 없어서 번역가들도, 번역 회사도, 채널도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지적이 있고 2개월쯤 지나서 또 같은 번역가가 작업한 작품 오역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이때는 채널 측도 화가 많이 나서 하청을 받고 있는 번역 회사도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됐었죠. 그때부터 번역 회사가 소속 번역가들을 달달 볶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감수 절차가 강화돼서 번역가들이 아주 피곤해진 거죠.

군생활 해보신 분들은 막사에서 총알 한 발이 사라지는 사고가 터졌다고 상상해보세요. 간부들이 총기 관련해서 몇 달을 달달 볶고 괴롭힐 것인지. 당시 그 번역 회사에서 일하던 번역가들은 하나같이 입이 빼쭉 나왔었죠. 감수가 빡빡하니 너무 피곤해졌거든요. 오역만이 아니라 온갖 트집을 다 잡아서 작업도 힘들어졌었고요. 그렇게 투덜투덜하다가 알게 됐는데 강화된 감수 절차로 번역가 전원의 결과물에서 오역이 계속 검출됐습니다. 물론 그 중엔 저도 포함됐고요. 심지어 당시 그 회사는 케이블 번역가(영화제 번역가 포함)들 중에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 회사였습니다. 실수는 늘 존재하지만 실수가 티가 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거죠. 물론 실수가 있더라도 티가 나지 않게 하는 것도 실력이긴 합니다만… “나는 오역을 안 할 자신이 있다”라고 하는 사람은 번역을 안 해봤거나 오만하거나, 신이 내린 번역가 셋 중 하나입니다.

 

 

4. 오역을 줄이는 이상적인 방법.

 

오역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장 효과가 큰 것은 전문 감수 인력을 두는 것입니다. 비현실적이더라도 이상적인 환경을 얘기해 볼게요.

 

1. 번역가가 번역.

2. 번역 실력이 출중한 감수자 A가 감수.

3. 번역 실력이 출중한 감수자 B가 감수.

4. 번역 실력이 출중한 감수자 C가 감수.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경우 전문 인력에게 감수 추가)

5. 출판사 편집자 수준으로 교정, 교열 경력이 많은 D가 감수

6. 영화사 내부 감수.

7. 번역가의 최종 재수정.

 

이렇게 감수하되 일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엑셀에 모든 대사를 정리해서 체크리스트처럼 1번부터 1,500번까지 하나하나 오역, 정역을 체크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회사에서 결재 받듯이.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오역과 오류를 잡을 수 있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말씀드린 만큼 저런 과정을 다 밟을 수 있는 영화사는 없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단순히 돈의 문제는 아닙니다. 영화 개봉은 스케줄이 정말 중요한데 영화사가 아무리 번역에 시간을 많이 쏟으려 해도 해외 제작사에서 영상과 대본을 넘기는 스케줄, 심의 스케줄, 극장-배급 관계자들의 시사 스케줄, 마케팅 런칭 스케줄, 관객 시사 스케줄 등을 전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번역 스케줄은 늘 급합니다. 그 급한 스케줄에 번역자, 감수자들 일정을 다 고려하고 감수자들의 영상 접근 권한도 작품마다 해외와 소통해줘야 하고 감수 내용을 종합해야 하고… 7일만에 그 과정을 다 하는 건 성의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여유 있게 잡으면 되지”라는 말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저와 작업하는 곳 중 규모 있는 한 영화사는 번역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라 1, 2, 5, 6, 7번의 과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번역가 입장에선 참 감사하죠. 감수자와 궁합도 잘 맞는 편이라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소 로컬 수입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없기 때문에 거의 번역 – 내부 감수 – 최종 수정의 과정만 거치죠. 내부 감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과정을 많이 거친 번역이 더 좋죠.

전문 감수자든 영화사 내부 감수자든 보통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입니다. 해외에서 유학 생활을 길게 하신 분들이 많고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를 잘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감수를 해도 모든 오역이 걸러지지 않는 걸 보면 단순히 영어 실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 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겁니다.

 

 

5. 오역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오역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노력으로 줄이는 방법만이 존재할 뿐이죠. 현실적인 방법은 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문 감수 인력을 갖추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수준으로 갖추자는 거죠. 감수 인력이 전혀 없던 회사라면 최소한 1명이라도 제대로 된 감수가 가능한 직원을 갖춰야 하고, 감수 전문직을 뽑을 여력이 없다면 기존 직원을 전문 감수가 가능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것마저 힘들다면 외주 감수를 쓰는 것도 생각해봐야겠죠.

규모가 큰 해외 번역 회사들의 경우 QC팀(Quality Control = 결과물의 질을 관리하는 팀: 보통은 이곳에서 모든 감수를 합니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부 QC팀도 있고 외주로 돌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몇 차례의 QC를 거쳐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죠. 당연히 이것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몇 차례에 걸쳐 QC를 진행하고 최초 번역가에게 돌아오질 않으면 QCer들이 임의로 자막을 마구 훼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럼 또 자막이 다 망가지죠. OTT 서비스(넷플릭스, 아마존 등)의 작품을 봤는데 자막이 엉망인 경우는 첫째, 그 작품을 맡은 번역 회사의 번역가가 실력이 부족하거나, 둘째, QC단계에서 QCer들이 과한 월권을 행사해서 자막이 다 망가졌을 때입니다. 그런데 해외 회사들은 그런 단계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어쨌든 QC팀에게 수정 권한을 다 맡겨버립니다.

말이 조금 옆으로 샜는데 직배사나 로컬 수입사들도 이런 QC 시스템을 조금 더 개선해서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번역 논란이 계속 이슈가 되고 앞으로는 더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데미지 컨트롤을 위해서라도 영화사들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가가 더욱 긴장해야 한다는 건 말할 가치도 없는 최우선적인 요소고요.

 

 

6. 번역가의 자세

 

저는 춘천의 모여중에서 영어 교생 생활을 했습니다. 벌써 그게 10년이 넘었네요. 2학년을 가르쳤고 교생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한 반에 저보다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두어 명씩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학생들이었죠. 한번은 수업 중에 제가 acoustic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아주 창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느꼈지만 앞으로 영어 선생님들은 점점 힘들어지실 겁니다. 번역가도 마찬가지죠. 관객들의 작품 이해도나 문화적 친밀도, 언어 실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어떤 관객들은 번역가보다도 높은 이해도를 보이는 마당에 관객들이 번역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건전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싫든 좋든 번역에 대한 관객의 관심은 이제 덮을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음악을 잘 아는 소비자들은 어떤 곡을 감상할 때 악기 구성이나 테크닉, 톤, 심지어 믹싱 수준까지 따지고 분석하고 즐기죠. 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이미 음악의 한 요소이니까요. 한국 영화가 아니라 외화라면 자막 또한 음악이나 영상처럼 그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됩니다. 이제는 자막을 평하거나 자막 자체를 즐기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번역이 중요하다는 말은 백번 해도 모자라지 않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번역가들이 전보다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지금보다 긴장하고 작업에 노력을 쏟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작업 기간이 7일이라도 그 일정 전에 짬을 내서 전작을 본다거나 원작을 읽어 본다거나 하는 노력은 충분히 할 수 있죠. 내 문장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틈틈이 해야 하고요. 앞으로 이 분야에 진입하는 번역가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갈수록 지금보다 가혹하고 힘든 직업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글을 이렇게 길게 썼지만 어떤 분들은 “실수는 당연히 나오는 거니까 번역가는 잘못 없고 관객이 이해해라 이거냐?”로 해석하실 겁니다. 그리고 글을 읽고도 “오역과 오류는 필연이다”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합니다.

“모든 실수를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느 선까지 줄이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다. 다만 번역가의 힘만으로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고 전문 감수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력이 10년, 20년 된 번역가라도 중학생도 안 하는 실수들을 합니다. 제가 이번에 brain을 ‘심장’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과 비슷한 예죠. 중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도 저게 두뇌라는 건 압니다. 1차로는 번역가가 번역과 감수에 더 꼼꼼했더라면 걸러낼 수 있었고, 2차로는 영화사 내부 감수에서 걸러낼 수 있었던 실수죠. 물론 번역가의 책임이 훨씬 큽니다. 1,200개, 1,500개를 확인하다 보면 이런 것들을 놓치는 일이 흔하죠. 게다가 오탈자 같은 것들은 한번 눈에 안 들어오면 대여섯 명이 오탈자 확인을 해도 눈에 안 띕니다. 그러다 꼭 시사나 개봉을 하면 눈에 들어오죠.

(추가: 확인 결과 해외에서 수급한 대본에는 heart, 영상에는 brain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해외 스크립터가 실수했거나 영상이 나중에 수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본과 번역본을 위주로 감수하기 때문에 집어내지 못 한 예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 많을 겁니다. 수십번 확인하고 결재를 올렸는데 꼭 상사가 확인하면 오타나 수치 오류가 발견된다거나, 조원 10명이 돌아가며 감수를 했는데 막상 발표할 때 PPT에서 엉뚱한 오타가 발견된다거나 하는.

번역가가 지적받지 않던 시절은 진작 끝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관객들의 지적이 훨씬 많아질 것이고 번역가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질 겁니다. 실수를 근절할 수 없다면 번역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죠. 실수에서 배우는 겁니다.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최소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다음 작품 때는 더 주의를 하는 것. 몰라서 틀렸던 것이 있다면 다시 틀리지 않도록 틈틈이 공부하고 익혀두는 것. 번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얼마전 <데드풀2> 개봉을 준비하면서 공황장애 증상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번역 이슈가 한창 크던 때라 압박이 심했거든요. 등 뒤에 벽이 없는 의자엔 앉지도 못했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호흡을 못 하고 머리 전체에 두피가 다 일어나서 비듬처럼 떨어지는 바람에 한동안 색깔 있는 옷을 못 입었습니다. 피부과에 갔더니 스트레스가 심하면 머리에 열이 올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믿기 힘든 얘기를 -_-.

본인 일로 시끄러운 것도 아닌데 웬 유난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남의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거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면 겁이라도 없겠는데 나도 실수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사방이 지뢰밭이고 나도 언젠가 반드시 밟을 것을 알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는 두려움. 제가 엄살을 부려 그렇지 번역하시는 분들은 모두 겪고 있는 두려움입니다. 앞으로 영화 번역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은 이런 거센 비판을 감수할 각오도 하셔야 할 겁니다. 저도 말은 쉽게 하지만 막상 그 입장에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Translation is the art of failure”라는 말을 했습니다. 번역 관련 인용구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데요. 번역은 실패의 기술”이란 말은 – 기술이냐 기예냐 예술이냐의 논의는 차치하고 – “번역은 반역”과 비슷하게 번역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옮겨도 실패, 패배라는 거죠. 그렇다면 억지로 이기려드는 것보다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더 중요해집니다. 어떤 기술로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

영화 번역가의 경우 작품마다 약 1,500번의 싸움을 하게 되는데 번역가는 그 모든 싸움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려 하지 말고 각각의 싸움마다 최선의 패배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인정하고 원문을 겸허한 자세로 존중하되, 실익을 거두는 영리한 패배를 해야 한다는 거죠. Brain을 심장으로 옮기는 부류의 실수는 영리한 패배 같은 게 아니라 멍청하고 무참하고 굴욕적인 패배에 속하기 때문에 논외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부딪힐 수많은 싸움에서 최선의 패배를 거듭하고, 싸움마다 복기하고 배우는 번역가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백전백승의 장수는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호락호락하게 지지 않는 백전노장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그 정도 내적 무장이 된다면 지금보다도 관객과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겠죠. 날을 세우는 일도 없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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