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ps! It appears that you have disabled your Javascript. In order for you to see this page as it is meant to appear, we ask that you please re-enable your Javascript!

번역청 같은 걸 어디에 쓴다고

번역청 같은 걸 어디에 쓴다고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청와대 청원 참여자가 7천 명을 넘고 있지만 내 주위 반응을 보면 경력이 긴 번역가일 수록 이 청원에 관심이 없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이런 청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어본 사람을 위해 전문을 옮긴다.

청원 내용 펴기
1. 미개한 중세 유럽은 선진 이슬람 문명의 학문적 성과물을 대대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스승인 이슬람 문명을 추월하고 나아가 근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사건이지요. 번역을 통해 후발 문명이 선진 문명을 추월한 대표 사례입니다. ‘번역 왕국’ 일본에는 전 세계의 지식이 거의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번역되어 있어서, 모국어만으로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번역은 일류 국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선행 조건입니다. 번역은 국력입니다.
.
2.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듯 한글은 가장 과학적입니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족한 게 큰 약점이지요. 온 시민이 한국어만으로 전 세계의 지식·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세종대왕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자 책무입니다. 번역은 지식 민주주의의 기반입니다. 지식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
3. 자동번역기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계도 학습을 해야 합니다. 마중물이 필요한 거죠. 번역물이 다량 확보된 언어일수록 자동번역기 성능이 좋아집니다. ‘알파고’도 수백만 개의 기보를 학습한 끝에 놀라운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이라도 양질의 번역 텍스트를 대대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역사에는 ‘월반’이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
4.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 동양 고전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 고전 텍스트 번역 작업을 최우선시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학과 한국학 전공의 석사·박사학위 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지요. 그들에게 동양학이 외국학이듯, 우리에게는 서양학이 외국학입니다. 서양이 동양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콘텐츠를 확대하듯이, 우리 또한 전 세계의 정보와 지식을 모국어로 옮겨 콘텐츠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국어에 대한 의무입니다.
.
5. ‘번역청’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국립번역원’도 좋고 ‘번역위원회’도 좋습니다. 번역을 시장에 맡길 수 없습니다. OECD 가입국 중 일인당 독서량 최하 수준인 한국의 출판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입니다.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이 고갈된다면 나라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지원만이 악순환에 빠진 번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도로, 항만, 철도, 통신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
6. 전문 연구자는 자신들의 공부에 필요한 언어를 배워 읽고 써야 하지만 교양과 기초 학문을 두루 섭렵해야 할 시민들이 외국어로 텍스트를 읽을 경우 모국어로 읽을 때보다 학습 능률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
.
7.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은 ‘학문 후속 세대 단절’을 우려할 정도로 피폐했습니다. 번역 활동은 인문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민주 시민에게 인문학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는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81822

 

원자가 번역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 같은 제목의 책 저자와 동일인인지 모르기에 – 번역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인정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감상과 내용의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다. 우선 청원 내용에 나온 것과 같이 출판 시장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번역서의 질 또는 양과의 직접적인 연관을 주장하기 어렵고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출판 시장의 쇠퇴와 인문학의 위기 같은 현상은 뚜렷한 어떤 하나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시대적, 문화적, 경제적 층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문화, 사회 전반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므로 백날천날 토론해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반은 틀리다. 지금도 대학에 수많은 번역과, 번역대학원이 존재하고 진지하게 번역학을 연구하는 번역학도들이 있는데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의 노고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 타 학문에 비해 홀대받는 것은 사실이고 번역 행위를 학문의 수준으로 대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번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실기를 학문적 성취로 인정하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이 전례없이 많은 시대이지만 못 버티고 그만두는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들이 대폭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았다.

청원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느라 글이 길어졌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번역청이 과연 필요한가?”이다. 청원자의 주장처럼 국가가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번역 사업과 번역가들을 전폭 지원하는 기관을 세운다면 당연히 두손 들고 환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힘을 보태야지. 문제는 공염불에 그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번역청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정부와 번역가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번역청은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
  2. 번역가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원 내용에 의하면 번역을 도로, 항만처럼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해야 하며 더는 번역을 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번역가를 모두 공무원으로 하자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번역 프로젝트를 번역청에서 관리하고 그곳에서 번역가를 선별해 의뢰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번역 시장가를 국가가 결정한다는 것일까?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아서 번역청으로 뭘 하자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질 않지만 청원 수준의 정부 개입은 완벽한 사회주의국가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물론 문화 시장에서 시장성이 전혀 없어 번역되지 않고 있는 고전 국역, 또는 학술-문화적 가치가 있는 서적 혹은 영상물의 국역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장성이 없어서 수입조차 되지 않는 좋은 책과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이 정도 사업이면 문체부에서도 가능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번역계 전반에 얼마나 대단한 활기를 줄 것이며 실질적으로 번역가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보통 정부 주도의 “ㅇㅇ청” 사업이 그렇듯 눈 먼 돈이 되어 사업 건 별로 하청의 하청이 될 것이고 혜택은 번역가가 아니라 플랫폼을 쥐고 있는 사업자들에게 돌아갈 확률이 크다.  이런 사업이 수십, 수백 년간 번역가들을 먹여 살릴 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혜택을 독점한 소수에게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내 의견에 동의했던 어떤 번역가의 말마따라 “교수들이나 좋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교수들을 폄훼하자는 게 아니라 정부 주도의 “ㅇㅇ청”이나 “ㅇㅇ연구소” 사업은 지금껏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 번역 컨텐츠의 양을 떠나 질을 얘기해 보자. 번역 질을 올리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내가 정답을 알고 있다.

 

번역가에게 충분한 번역 납기 일정을 보장하고 그 작업 일정에 합당한 보수를 안전히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

 

번역가로 10여년을 살아오며 느낀 대로 말하자면 이게 정답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번역 질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다.  좋아진 여건으로 태만해진다면 질이 하락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여건이 좋아져도 태만해도 될 정도로 좋아질 리는 없으니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

번역을 시장에 맡겨둘 수 없으니 번역청을 세워 번역을 사회간접자본처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단적이고 허황하기 때문에 반론을 따로 적진 않지만 번역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공감한다. 번역 단가는 갈수록 바닥을 치고 베테랑 번역가들도 일이 없어 번역을 접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출판번역만이 아니라 기술, 영상 모든 번역 분야에 걸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이 적어지고 단가가 추락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한 대가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법적인 보호 장치는 유명무실하다시피 하고 악덕 사업체들은 법망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며 번역가들을 유린한다. 번역청에 별 관심이 없다는 내 의견에 반대했던 어떤 번역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자는 거냐. 이러다 모두 공멸한다.” 옳은 말씀이다. 번역가들이 공멸하지 않기 위해선 뭐라도 하긴 해야 한다.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번역청 설립이라는 제안이 문제 제기 이상의 의미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에 쓴 것처럼 번역의 질과 번역가 처우는 직결된 문제다. 번역가 처우가 올라가면 원칙적으론 번역의 질도 올라간다. 번역가 처우가 엉망인 지금 번역의 질이 그나마 이 정도까지 유지되는 것은 감히 말하건대 번역가들의 희생 덕분이다. 자기 결과물에 대한 자긍심과 번역이란 행위에서 오는 보람으로 착취에 가까운 시스템을 죽기 살기로 버텨내고 있다는 얘기다. 최저 임금 수준의 번역료를 받는 번역가들도 많은 지금, 번역가 처우 개선의 필요성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시 번역청 얘기로 돌아가서 번역청이 번역가들을 지원해 주는 곳이라면 – 일단 번역 시장 단가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건 말이 안 되기에 단가 이야기는 배제하고(번역은 농산물이 아니다) –  번역 보수 지급과 번역 저작권 보장을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돈이든 저작권이든 떼이지 않게 강력한 법적 장치를 만들어 주면 된다. 이것만 실현돼도 번역가들이 숨은 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문화계 종사자 중 프리랜서와 개인사업자라면 모두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인데 굳이 번역청을 따로 만들어 번역가들의 문제만 해결하면 끝일까? 아니, 애초에 번역가의 문제만 단독으로 해결이 가능한가? 그리고 과연 번역이라는 행위가 정부가 최우선 순위로 챙겨야 할 정도로 음악, 미술, 영상, 문예 등 그 많은 문화 생산자들의 행위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나? 청원자는 번역의 가치와 숭고함을 말했지만 나는 번역이 다른 문화 생산 행위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장담할 자신이 없다. 골방에서 굶어죽고, 수명을 깎다시피 고된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 또한 사정이 급하긴 매한가지이므로 번역청을 만든다면 상식적으로 그들을 위한 무언가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분야의 문화 생산자들을 위해 각각의 기관을 따로 만드는 건 심히 비효율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없다. 행위를 가치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는 번역가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청을 세워 따로 대응하고 지원할 게 아니라 불이익받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여 법적 장치를 만드는 편이 훨씬 강력하고 실현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뮤지션, 작가, 번역가, 강사 등등 문화계 종사자라면 몇 번씩은 다 돈을 떼이고 저작권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단가 추락, 보수 미지급은 너무 흔한 이야기고 독을 품고 재판까지 가서 승소 판결을 받아내도 보수를 받아내지 못하는 예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도 지금까지 얼마를 떼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법적으로 불리한 것은 물론이고 자기 이름으로 통장 하나 만들기 힘든 집단이다. 그런데도 프리랜서의 수가 직장인 수만큼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단합이 안 돼서 그런 것인지 프리랜서를 위한 법안은 입법은커녕 발의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번역청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가진 협회나 조합이다. 협회도 어영부영 하는 일 없이 이름만 협회로 남는 일이 다반사라서 이것도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번역협회라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실질적으로 번역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자신을 희생하는 총대를 – 안타깝지만 – 주축으로 한 ‘제대로 돌아가는 협회나 조합’이 필요하다. 문화계에도 성우 협회나 방송작가 협회처럼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협회들이 있다. 작업 단가까지 협상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있는 협회. 번역가들도 처우 개선을 절감한다면 제대로 돌아가는 조합이나 협회를 만들고 입법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입법을 통한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할 생각을 해야지 번역청 같은 뜬구름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래전 영상번역가 협회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심지어 그것이 번역청 설립과 비견될 정도로 허황된 꿈인 것도 알고 있다. 프리랜서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참여를 독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도 영상번역계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지만 참여도는 처참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 정부에 번역청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손 안 대고 코는 풀고 싶고, 코 좀 풀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밖에 안 되지.

가능성이 희박하게나마 있는 건 위에  말한 각 분야의 문화계 종사자들이 연대해서 입장을 정리하고 그나마 발의 건수가 많고 말이 통할 것 같은 국회의원을 – 대충 떠오르는 사람은 있다. 바리바리 – 괴롭히는 것이다. 갑질 당하지 않고, 돈 떼이지 않고, 저작권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법을 요구하고 문화계 나름의 방식으로 투표에 영향력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하면 될 일이다. 이게 번역가 처우 개선의 가장 기본이고 핵심이다. 이 토대가 마련된다면 그 위에 우수한 번역 인력 양성이든 번역 질 향상이든 얹을 수 있는 것이다. 번역청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만병통치약이라는 허황된 약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