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내 젠더, 사회적약자에 대한 표현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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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내 젠더, 사회적약자에 대한 표현

자막 내 젠더, 사회적약자에 대한 표현

레이디 맥베스를 봤는데 중간에 나온 갈보짓이라는 자막 이후로 영화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황석희는 씨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단어를 쓴거지? 갈색 보지짓이 대체 뭔데? 한남이 동양여성 혐오하기 위해 만든 단어를 백인남성이 백인여성의 외도를 비꼬는 장면에서 넣는거 존나 일일이 설명할 필요를 못느낄 정도로 충격적이고 개빻았다. 진짜 무슨생각으로 그런 단어를 쓰면서 자막을 넣은거지? 갈보짓? 갈보짓이 뭔데 씨발(2017.8.4)

 

위와 같은 트윗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럽길래 언급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부터 한번 정리하려던 글도 쓸 겸 글을 올려요. 딱히 저 트윗에 대한 해명은 필요 없어 보이지만 젠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번역 표현을 다루는 글을 쓰기엔 마침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뜻하지 않게 미뤄둔 글을 쓰게 해주신 이름 모를 트위터리안에게 감사를.

러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제가 번역하면서 가장 주의하는 것 중 하나가 젠더 표현과 장애인, 노약자, 빈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표현이에요. 아무 고민 없이 쓰다 보면 언어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들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거든요. 가장 흔한 예가 ‘병신’이죠. 영상물에서 asshole이나 idiot이 병신으로 번역된 예는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화자가 청자의 신체 상태를 조롱하는 맥락이 아니면 굳이 ‘병신’이란 용어로 옮길 필요는 없어요. 우리 말 어휘엔 무수히 많은 욕이 있으니까요. 이것도 언어학자나 번역가에 따라 여러가지 입장이 있긴 합니다. 이미 신체적인 결함을 비웃는 것을 넘어 여러가지 의미의 멸칭으로 자리잡힌 비속어를 굳이 하나의 뜻으로 고정해 배제할 필요가 있냐는 입장.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제가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에요.

다른 포스팅에도 적은 적이 있는데 저는 3년 전 ‘프란시스 하’라는 작품을 번역하면서 ‘개념녀’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어요.

고개를 들 수 없는 자막

밥 계산하는 여성에게 고맙다며 하는 대사에 ‘개념녀’라는 단어를 넣었었죠. 이런 자막이 젠더의식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나쁜 자막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굳이 그렇게 쓸 필요가 없는 장면이거든요. 원문과도 거리가 있고요. 당시엔 그렇게 쓰는 게 위트 있다고 생각하고 뿌듯했던 모양입니다. 그 자막을 보고 불쾌했던 여성들이 많으실 거예요. 비판받아 마땅한 자막이죠.

반대로 남성에 대한 표현도 고민 없이 함부로 쓰는 일이 자주 있어요. 이것도 성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잘못 중에 하나인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장난처럼 사내아이 고추를 만지는 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서 그럴까요. 자막에서도 남성에게 모멸적인 표현이 아무런 가책 없이 사용되곤 합니다. 저는 남자라 그런지 그런 자막을 더 쉽게 쓰기도 하고 딱히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를 때도 많아요.

정리하자면 여성에 대한 표현이든, 남성에 대한 표현이든, 그밖에 다양한 성에 대한 표현이든 어휘의 뜻과 무관한 멸칭을 사용할 경우엔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거죠. 굳이 뜻이 다른 멸칭을 갖다붙일 필요가 없다면 쓰지 않는 게 좋고요.

 

이디 맥베스에서 ‘갈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어휘가 고어, 혹은 사어에 가까운 옛말이라는 점이에요. 레이디 맥베스의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입니다. 그러니 사극이죠. 사극을 번역할 땐 어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현대어만 썼다간 옛스러움이 사라질 것이고, 고어만 썼다간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극을 번역할 땐 wedding이란 단어가 나오면 보통은 ‘결혼’이 아니라 ‘혼인’으로 옮깁니다. letter라는 단어가 나오면 ‘편지’보다는 ‘서신’이라는 어휘를 선택하죠. ‘갈보’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 어휘일 뿐이지 다른 의도가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혹자는 갈보가 창녀보다 심한 멸칭이니 갈보라고 쓰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하지만 한국에서 갈보란 말이 쓰이던 시대엔 창녀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논다니’라는 말은 있었더군요. 당시에도 창녀라는 말이 존재했는데 그보다 윗급의 멸칭으로 갈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옛말일 뿐이죠. 그리고 일제시대의 잔재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갈보는 우리말입니다. 갈보의 어원까지 등장하면서 논란이지만 욕의 어원에 대한 설은 말 그대로 설입니다. 정설이 있을 수 없으며 학자들도 사초 따위로 짐작할 뿐이죠.

‘갈보’라는 표현이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문학 번역서나 한국 문학,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휘라는 걸 차치하더라도(제가 기억하기론 고교 문학 교과서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어느 작품인지 가물가물하네요) ‘갈색 X지 짓’으로 풀어 생각하는 건 솔직히 프로이트적 해석에서나 가능할 당황스러운 발상이에요.

 

금까지 젠더, 사회적약자에 대한 멸칭을 자막에서 자의적으로 쓰면 안 되는 예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젠 오히려 그것들을 사용해야 하는 예를 말씀드릴게요.

좋은 번역가는 충실한 전달자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연출자의 의도를 최대한 가감 없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번역가의 의무죠. 물론 1,500개 가량의 대사 하나하나, 어휘 하나하나에 뉘앙스와 스타일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번역가의 사견이 들어가 대사를 망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더욱 바짝 긴장하고 번역해야겠죠.

예를 들어 연출자가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로 설정한 A라는 남성 캐릭터가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대본을 보면 이 사람이 뱉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성차별적인 발언입니다. 이럴 경우 번역가는 연출자의 의도대로 이 사람의 대사를 가감 없이 자막으로 옮겨줘야 합니다. 번역가의 윤리적 잣대로 대사를 순화하거나 뜻을 바꿔버리면 안 되죠. 내가 하는 대사가 아니라 그 인물이 하는 대사이기 때문이요. 전에 데드풀 때는 자막에 욕이 난무한다고 번역가의 인성이 쓰레기라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데드풀이 했던 욕이니 데드풀의 인성을 탓합시다.

유사한 예로 장애인을 비웃고 욕하는 망나니 캐릭터가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이런 사람이 장애인에게(혹은 정신장애인) cripple, retard란 말을 했을 땐 “이 불구야”, “이 장애인아”보다 “이 병신아”가 맞겠죠. ‘병신’이라는 말은 위에도 쓴 것처럼 제 언어관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 캐릭터의 언어관에 맞는 말이죠. 캐릭터와 장면의 맥락이 이럴 땐 성차별적인 어휘든, 사회적약자를 조롱하는 어휘든 저는 그대로 옮깁니다. 이런 경우까지 번역가 나부랭이가 개입해서 순화하고 사견을 넣는 것은 연출자와 관객을 기만하는 거죠.

말은 거창하게 썼지만 저는 무수한 실수를 하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하게 될 번역가예요. 그렇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은 최대한 조심스레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자막에서 젠더, 사회적약자에 대한 표현이 잘못됐거나 윤리, 정치적으로 그른 표현들이 있다면 feedback@subtitler.net으로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언제든 감사히 읽고 다음 작업들에 반영하겠습니다.

*<레이디 맥베스> 많이 봐주세요. 영화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