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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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 번역 후기

로건 – 번역 후기

업 중에 <로건>처럼 깊이 교감했던 작품은 지금껏 <나의 어머니> 밖에 없습니다. 두 작품 모두 제 가족과 관련이 있거든요. 이번 번역 후기는 <나의 어머니> 번역 후기가 그랬듯 구구절절 길고 제 개인사가 가득합니다. 번역 이야기만을 기대하셨던 분들에겐 조금 죄송한 글이 되겠네요.

 

<로건>을 작업하던 1월 말경,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가족들이 차례로 밤새워 간병해야 할 상황이어서 제가 간병할 땐 병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마감이 마침 그때 걸쳐 있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예상했지만 작업이 잘 되진 않았습니다. 밤새 5분, 10분 간격으로 계속 작업 중에 일어나서 봐드려야 했으니까요. 아버님은 그렇게 일주일 정도 함께 계시다 하늘로 가셨습니다.

재작년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는데 2년만에 한 분 남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죠. 보통 부자관계보다는 장인, 사위 관계가 훨씬 살갑기 쉬워서 저도 장인어른과 굉장히 가까웠어요. 같이 캠핑도 가고, 둘이 술도 마시러 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의지하게 된 면도 있었고요. 그래서 더욱 상실감이 컸습니다. <로건>은 그런 상황에 작업하게 된 작품이에요. <로건>의 가장 굵직한 테마는 죽음과 상실, 가족과 계승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테마들을 살갗에 닿듯이 느끼면서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로건이 찰스를 묻어주던 장면은 아주 울림이 깊죠. 찰스에겐 호수가 여러 의미가 있으니까요. 찰스가 좋아했던 자비에 스쿨의 호수라거나 로건과 썬시커를 타고 나가 살기로 했던 이야기라거나. 이 장면에서 로건은 찰스를 묻어주면서 아래와 같은 대사를 합니다.

 

Well…
이만하면…

It’s got water, and…
옆에 호수도 있고

It’s got water.
호수도 있고…

 

저는 이 장면에서 로건의 감정을 잘 알 것 같아요. 저 말은 장인어른을 묘지에 모실 때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거거든요. 장례식 땐 처남이 아직 어려서 제가 상주 노릇을 하느라 묘지도 제가 직접 가서 알아봐야 했어요. 시립묘지에 모셨는데 시립묘지는 접수한 순서대로 자리가 배정된다더군요. 지방이라 그런지 묘지도 넓고 풍경이 좋았는데 운이 좋아서 지대가 높은 곳을 배정받았어요. 지대가 높은 덕에 양쪽에 있는 산과 함께 저 아래 있는 소박한 저수지도 보였어요. 생전에 캠핑에 심취하실 정도로 산과 자연을 좋아하시던 분이라 이런 풍경을 좋아하실 것 같더라고요. 안장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이 또 옆에서 우셔서 뭐라도 위안이 될 말을 찾아서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쥐어짜서 찾은 위안거리가 풍경이 좋다는 거였어요. 이만하면 옆에 산도 있다느니, 저수지도 보인다느니 하면서…  그런데 막상 말을 뱉고 나니까 눈물이 왈칵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그 소중하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옆에 있는 산이 무슨 의미가 있고, 저수지가 보이는 게 무슨 대단한 위안이 되는가 싶어서. 그따위 걸 위안거리라고 찾아서 말을 뱉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습니다. 아마 영화 속의 로건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어떻게든 위안거리를 찾아서 입 밖으로 내긴 했는데 그러고 보니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화가 나고 이 상황이 억울한 거죠. 애초에 찰스가 죽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 대사는 작업하고서 검토할 때마다 울었던 것 같아요. 그때 생각이 나서.

 

 <로건>은 어찌 보면 가장 가엽고 괴로웠던 히어로에게 마지막으로 가족이라는 제일 큰 선물을 준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자막에도 가족이라는 뉘앙스를 조금씩 주려고 한 부분들이 있어요. 편의점에서 과자를 멋대로 먹는 로라를 말리는 로건이 “Not ok”라는 대사를 하죠. 이 대사는 “그러면 못 써”로 번역돼 있습니다. “이러면 안 돼”, “하지 마”가 아니라 “그러면 못 써”로 작업한 건 부녀관계 같은 뉘앙스를 이런 장면에서라도 조금씩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이 장면이나 엘리베이터 장면 등은 연출자의 의도가 그랬다고 생각해요. 아주 평범한 가족 같은 분위기와 대사.

찰스와 로건도 마찬가지예요. 나이는 로건이 훨씬 많지만 둘은 친구라기보단 부자관계 같죠. 작품에서도 로건이 찰스의 잔소리에 “뉘예~ 뉘예~ 그럼요, 아무렴요”처럼 비아냥대는 장면들이 있어요. 이 장면에서 대사를 들어보면 로건이 말끝에 “pop”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아버지(꼰대)처럼 잔소리하지 마라”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죠. 가능하면 이런 부분들은 자막에서도 ‘아버지’라는 말을 넣어서 다 살려줬어요. 로라와 로건을 가족으로 보이게끔 연출한 것처럼 이런 부분들도 로건과 찰스가 가족으로 보이게끔 연출한 부분이라고 판단했거든요.

 

리고 스페인어 자막은 왜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스페인어는 영어권, 비영어권 국가 모두 전세계 공통으로 자막이 나오지 않습니다. 로라와 로건의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던 연출이겠죠. 영화 <루시>에서 최민식 배우의 한국어 대사는 해외에서 봐도 영어 자막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뤽 베송 감독은 무지에서 오는 공포심을 관객에게 주고 싶었다고 해요. 이것도 연출자의 의도죠. 스페인어 내용이 궁금하시겠지만 모르고 보는 게 연출자가 의도한 바에 부합합니다. 정 궁금하시면 인터넷에 찾아보세요. 정리해 놓으신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뒤에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꼼꼼히 보고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죠.

 

번 <로건>에선 오타도 발견됐고 오역 피드백도 있었어요. 핑계를 대자면 끝도 없겠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제가 더 꼼꼼히 못 본 책임이죠. 제게도 인생작 같은 작품인데 이렇게 실수가 나와서 너무 안타깝고 면목 없고 자괴감도 느꼈어요. 이번에 관객들께 많이 혼나고 정신 차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실수가 없을 거라고 확언을 드릴 순 없지만 더 꼼꼼히 보고 확인해서 만족스러운 자막 보여드릴게요. 관람에 불편함을 느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직배사 작품은 2차 판권(VOD, 블루레이) 등에서 자막 수정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마스터를 해외에서 하기 때문에 틀린 자막이 있어도 정말 엄청난 오류가 아닌 이상 바로잡기가 어렵거든요. 다행히 이번 건은 수정 조치해 주셨습니다. 자막 수정을 위해 거쳐야 하는 관계자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라서 다들 많이 번거롭고 귀찮으셨을 텐데 징징대는 번역가의 부탁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죄송스런 마음이에요. 걱정하셨던 관객분들은 블루레이에서 오타와 오역이 제대로 수정된 자막으로 관람, 소장하실 수 있습니다. 매번 이렇게 수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이번은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이기 때문에 다음번엔 더 주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관람에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이 엄청나게 길어서 반으로 쪼갤까 하다가 기왕 쓴 글 끝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로건>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곡은 예고에 나온 Hurt를 부른 가수 조니 캐쉬의 The Man Comes Around입니다. 너무 슬프게 끝나서 훌쩍이고 있는데 밝은 컨트리 리듬의 노래가 나와서 감정을 다 망쳤다는 글을 봤습니다. 곡 분위기만 보자면 그럴 수도 있지만 가사를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굉장히 무거워요. 요한계시록을 가사로 쓴 곡이거든요. 아주 난해하고 무겁고 무서운 곡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곡인데 로건의 인생과 최후, 죄책감, 하늘에서의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들어보시면 굉장히 공감이 되실 거예요.

제가 1절을 통째로 번역했었는데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찾은 부분만 붙여드려요. 이 가사를 화면에 올려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저작권이며 뭐며 여러 요소들이 엮여 있는 일이라서요. 분위기만 보시라고 아래 살짝 붙여드리면서 <로건> 번역 후기를 마칩니다. 이 작품은 아버님을 떠올릴 때마다 같이 떠오를 것 같아서 정말 오래오래 평생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엄청나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좋은 작품으로 뵐게요. 관람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한 남자가
이름을 적으며

의인과 죄인을
결정하네

모두 같은 곳으로
가진 않으리

황금 사다리가
내려오리라

그가 오는 날

온몸의 털이
곤두서리라

한 모금, 한 입마다
공포가 맺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