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 수 없는 자막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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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 수 없는 자막

고개를 들 수 없는 자막

지금껏 쓴 자막 중에 가장 자신있는 자막, 내가 봐도 잘했다 싶은 자막은 뭔가요?

 

터뷰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건데 그때마다 대답을 제대로 못 한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자막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에 비해 부끄러운 자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 중 몇몇 자막은 지금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죄지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업할 당시엔 재밌다, 괜찮다고 써놓고 왜 뒤에 가서 후회할까? 언어도, 시대상도 변하고 나도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멀쩡히 쓰고 있는 단어와 표현들도 단 몇 년만 지나도 내 부끄러움의 소재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라도 최대한 다양한 감수성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프란시스 하>라는 작품에서 ‘개념녀’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 있다. 상황은 이렇다. 남녀가 저녁식사를 같이 한 자리에서 – 여자가 밥을 사겠다고 나오라고 한 자리였다 – 식사 후 남자가 굳이 굳이 돈을 내려하자 여자가 계산하겠다며 남자를 막는 장면. 이 장면에서 남자는 웃으며 이런 대사를 한다.

 

You're a lady.

 

그 대사를 하는 남자 캐릭터가 재수없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왠지 그런 말을 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그랬다.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여성 비하적인 요소가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거다. 설혹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아무런 뉘앙스가 없는 대사에 – 원래는 매너가 좋다는 뜻일 뿐이니 – 여성 비하적인 표현을 입힐 이유는 없다. 캐릭터가 어쩌고를 떠나 그 당시 내 머릿속이 그랬던 것뿐이다. 써도 되는 말.

비슷한 예로 ‘asshole’ 같은 단어를 ‘병신’으로 쓴 적도 있다. 저 영어 단어엔 장애인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없다. 거기에 영화 장면의 맥락마저 장애인 비하와 관계가 없다면 ‘병신’이란 번역으로 뉘앙스를 입힌 오로지 나의 잘못이다.

지금껏 이런 감수성 부족한 번역들이 많았고 어쩌면 지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언어 공부에서도 기술적인 측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언어 윤리에 대한 공부다. 그에 대한 것들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반성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까지 인지하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번역가로서 연차가 늘어가면서 저런 초창기의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진 않는다. 저런 예들은 대부분 개봉관 번역 1~2년차에 저질렀던 것들인데 영화번역은 출판번역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2쇄, 3쇄가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정할 수도 없고 한 번 저지른 실수가 영원히 각인돼 버린다. 그래서 가끔 그런 잘못들을 떠올리면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고 그게 아끼는 작품이라면 더욱 평생의 짐처럼 가슴에 박히기도 한다.

영화번역가에게 가장 큰 죄는 관객들의 영화 경험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것이 언어 기술적인 것이든, 언어 윤리적인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