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세상의 끝 - 번역 후기 - 영화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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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 – 번역 후기

단지 세상의 끝 – 번역 후기

비에 돌란의 작품은 칸 영화제 시즌이 되면 늘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죠. 언젠가는 돌란 감독의 작품도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마미>를 워낙 좋게 봤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전에 한국에서 자비에 돌란 작품을 독점하다시피 수입하시는 엣나인에 연락을 드린 적이 있어요. 돌란 감독의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어필 때문이었을까요. 이번 작품은 감사하게 제게 의뢰가 왔어요. 논란의(?) 작품이기도 해서 꼭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작업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있어서 <단지 세상의 끝> 원작 책을 읽어 봤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희곡이라 별 부담 없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한 페이지를 몇 번씩 읽어야 할 정도로 읽히질 않았어요. 결국은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책을 다 봤습니다. 잘 읽히지 않은 이유는 문장이 구어가 아니라 문어였고, 그것도 원문에 충실한 희곡투의 번역이었기 때문이에요. 검색을 하다가 <단지 세상의 끝> 한국 연극 공연 영상을 보게 됐어요. 긴 영상은 아니었고 주인공의 독백 장면이 담겨 있는 영상이었는데 책과 똑같은 대사를 하시더라고요. 길기도 하고 너무 딱딱한 번역투라 다음 대사를 잇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역시나 배우분들은 대단하시더군요. 그 대사를 그대로 끝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하셨어요.

그 장면을 보고 사실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야 대사를 놓고 수십, 수백번 고민하면서 의미를 찾겠지만 저렇게 외국어와 어순까지 거의 1:1 번역이 된 문어를 관객들이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엔 논리적인 연결이 있어야 긴 대사의 전체적인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번역자의 번역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번역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가독성, 흐름을 중시하는 쪽과 원문 중심으로 원작자의 숨결까지 옮겨야 한다는 쪽. 책은 희곡도 운문이기 때문에 최대한 어순까지 외국어와 맞춰 번역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 사실 독자가 빠르게 이해하긴 어려운 문장이죠.

자비에 돌란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이 희곡을 각색했기 때문에 대사의 대부분이 구어로 변형돼 있습니다. 물론 원문을 그대로 쓴 대사도 있고요. 이럴 땐 갈등이 생깁니다. 관객들에게 편하게 완전히 구어체로 바꿔서 갈 것인가, 그래도 희곡 원작이니 희곡의 맛을 살릴 것인가. 제가 선택한 쪽은 전자예요. 배우들의 연기는 살아 날뛰는데, 가뜩이나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감정을 퍼부어대는데, 뱉는 말이 문어일 경우엔 감정이 다 식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문어 대사를 넣어 확인도 해봤고요.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어 영화라 아예 자막 파일을 만들었거든요.

주인공인 루이의 감정은 대사보다 연출을 통해 더 많이 드러납니다. 할 말이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라서요. 그에 비해 앙투안이나 쉬잔 같은 캐릭터는 감정을 고스란히 밖으로 내뱉습니다. 거의 모든 감정이 대사에 투영돼 있어요. 이런 경우엔 말투도 굉장히 중요해요. 가령 무조건 말꼬리를 붙잡고 시비를 거는 타입의 앙투안은 대사도 얄밉고 짜증나는 투로 쓰는 게 좋죠. “그래, 미안하다” 같은 대사라도 표정이나 말투가 비아냥대는 분위기라면 “송구스러워서 어쩌나”처럼 배배 꼬인 대사를 쓰는 게 캐릭터 표현에 좋다는 거예요. 카트린이나 쉬잔, 루이도 마찬가지예요. 이 인물들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는 주의 깊게 보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아요.

번역에 대한 얘기를 구구절절 썼지만 사실 이 작품은 캐릭터들이 외계인어로 떠들고 자막이 없다 해도 감정이 전달될 정도로 연기가 좋은 작품이에요. 연기력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이라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사실 자막을 통한 캐릭터 표현이니 하는 것들은 대단한 의미가 없기도 해요. 관객의 이해를 아주 살짝 거드는 정도랄까.

그리고 이 작품의 번역 이야기 중 꼭 하고 싶었던 건 제목 얘기예요. “It’s Only the End of the World(Juste la fin du monde)” 한글로는 <단지 세상의 끝>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작품에서 말하는 “세상의 끝”은 어감이 조금 달라요.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세상의 끝”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과 하는 식사 한끼일 뿐이다.” 이런 의미의 “세상의 끝”이에요.

루이는 가족들을 보러 가는 게 너무 두려운 상황이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향해요. “그래,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뭐” 하면서. 워낙 유명한 원작의 한국어 제목이 저렇고 임팩트 있는 제목이라 그대로 쓰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작품 내에서의 쓰임은 조금 다릅니다.

루이가 가족을 만나러 가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의 끝”에 비할 정도인지 그게 아닌지는 극장에서 확인해보세요. 🙂